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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비엔날레, 二色(이색) 광주! 양림동으로 온 세계, 양림동에서 자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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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링3
2026-09-22 15:43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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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한 번 찾아오는 광주비엔날레를 두 배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 광주의 속살이라고 불리는 양림동을 찾는 것이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28개 가운데 10개가 양림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같은 시기,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또 하나의 비엔날레도 만날 수 있다. 올해 제4회를 맞은 양림골목비엔날레다. 하나는 세계의 동시대 미술을 마을로 불러들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안에서 자라난 예술을 다시 골목으로 끌어낸다.
계속 확장하는 파빌리온…올해는 10개
양림동을 선택한 10개의 파빌리온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쪽은 광주비엔날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주제로 열리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9월5일 개막해 11월15일까지 72일간 이어진다. 본전시와 함께 광주 전역에서 28개의 파빌리온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10개가 양림동에 모였다.
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때부터 양림동이 야외 전시 무대로 주목받았고, 2024년과 2026년에는 더욱 많은 파빌리온이 마을 곳곳으로 확장됐다. 이제 양림동은 근대역사문화마을의 풍경과 세계적인 동시대 미술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부 파빌리온은 양림동의 역사적 건축물과 작가의 작업공간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작품 속에 적극 끌어들였다.
몰타 파빌리온은 100년 전 선교사 사택을 개조한 ‘글라스폴리곤’이라는 공간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렸다. 몰타의 예술가 듀오 퐁크스(PONKS)팀은 이곳에 ‘ROPE TEMPLE(로프 템플)’을 만들었다. 수백개의 밧줄을 엮어서 방 안에 또 하나의 방을 만들고, 중앙에는 신성한 나무처럼 솟은 밧줄 구조물을 세웠다. 한국의 금줄과 몰타의 밧줄 전통을 연결한 작품이다. 유리 벽에는 한국어와 몰타어 시(詩)를 새겼다. 참여 작가들은 거의 3개월을 광주에 머물며 현지에서 작업했다.
19세기 말 전통 가옥의 모습을 간직한 이장우 가옥(광주광역시 민속문화유산 제1호)에는 카사 와비(Casa Wabi) 파빌리온의 ‘황금비(Gold Rain)’가 펼쳐진다. 멕시코 작가 보스코 소디(Bosco Sodi)가 22캐럿 금을 입혀 690도에서 구운 화산석 400여점을 가옥 내부와 정원, 안뜰에 배치했다. 100년이 훌쩍 넘은 한옥에 황금빛 돌들이 내려앉은 풍경이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100여년 전 선교사들이 자리 잡았던 양림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는 네덜란드 파빌리온을 만날 수 있다.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은 동시대 미술의 전시장이 됐다. 전시 주제인 ‘감지하기 어려운 것들의 정원’은 선교사 사택의 고유한 공간감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공기, 먼지의 여린 진동처럼 눈에 바로 띄지 않는 섬세한 요소들을 구현했다.
이 밖에도 양림동에는 아사쿠사(양림문화샘터), 캐나다(이강하미술관), 우루과이와 페루(양림미술관), 폴란드(이이남스튜디오), 프랑스(양림아티움) 등 총 10개의 파빌리온이 반경 1㎞ 안에 위치한다. 가을을 걷는 동안 다양한 현대미술을 만나게 된다.
골목마다, 집집마다…마을이 미술관
주민이 모여서 시작한 양림골목비엔날레
이번엔 또 다른 비엔날레 이야기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코로나 시기에 침체된 양림동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20년 문화기업 쥬스컴퍼니가 기획한 축제다. 마을의 예술인과 기획자, 주민과 상인이 주축이 되어 양림미술관거리협의체를 만들고 민간 주도의 격년제 골목 미술 축제를 시작했다. 슬로건은 단순하다. ‘마을이 미술관이다.’ 거창한 미술관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마을의 미술관과 작가 작업실, 빈집과 빈 점포, 식당과 카페까지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주민의 연대로 축제를 확장해 왔다.
2026년 제4회 양림골목비엔날레는 9월10일부터 10월31일까지 열린다. 메인 전시는 ‘골목전(골목, 시간의 층위)’과 ‘풍경전(원더랜드)’이다. 이 밖에도 도슨트 투어, 퍼포먼스 투어, 스티커 투어와 ‘양림스푼위크’ 등 마을 곳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골목전은 골목 안에 자리한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골목 밖으로 연장해 작품 속 모티브를 입히고 시간의 선으로 연결했다. 한희원·신선화·한부철·서여름 작가가 참여해 ‘골목, 시간의 층위’를 주제로, 각자의 작업공간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작품 속 모티브를 덧입혔다. ‘골목전’의 전시디렉터이자 참여 작가인 한희원 작가는 누구보다 먼저 양림동의 가치를 알아채고 마을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다. 한희원미술관 골목에 들어서면 그가 얼마나 양림동을 사랑하는지가 바로 느껴진다.
양림동이라고 불리는 원더랜드
‘풍경전’은 양림동 곳곳의 골목과 비어 있는 공간에서 작품을 만나는 전시다. 올해 주제는 ‘원더랜드(Wonderland)’다. 정헌기 전시디렉터는 양림동을 ‘또 하나의 이상한 나라’로 바라본다. 참여 작가는 19명이다. 전시를 감상하는 팁이 있다면, 조형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건물과 골목, 표지판과 일상의 풍경까지 작품과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이야기는 보이는 것보다 크다. 관람의 출발점인 양림오거리에서는 ‘책 읽는 소녀상’과 은빛 ‘유니콘’ 조형물이 낯선 조합을 만든다. 정헌기 전시디렉터는 이곳을 양림동이라는 ‘원더랜드’로 들어가는 관문에 비유한다. 만약 소녀상에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릴 수 있다면, 골목에서 만나는 기묘한 형상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
근처 주민 휴식 공간에 설치한 바람 풍선 작품은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 병정’과 닮았다. 평소 진중하고 점잖기만 한 박정구 작가가 이번 풍경전을 위해 제작한 ‘근엄한 내 안의 숨은 본질: 깨방정’이라는 작품은 ‘자신만의 원더랜드를 발견하는 또 하나의 앨리스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전시의 메시지를 ‘깨발랄하게’ 전달하고 있다.
발걸음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흥했던 백서로 골목으로 이어진다. 새로 문을 연 가게도 있지만 임대 공지를 내건 빈 점포도 눈에 띈다. 광주에서 손꼽히는 핫플레이스였던 양림동의 주춤거림이 당혹스럽지만, ‘꽃을 들고’라는 제목의 테트리스 조각 조형물과 ‘에너지 재정비 중’이라는 작품이 한적해진 골목에 새로운 표정을 더한다. 풍경전은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움직이기 위한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원더랜드의 클라이맥스는 호랑가시나무언덕으로 향하는 길과 함께 상승한다. 녹색 대문 앞에 세워진 노란색 조형물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개의 두상을 한 장신의 조형물 ‘들개와 여인에 홀린’은 작가의 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형상이다.
풍경전은 호랑가시나무언덕에서 이야기를 완결한다.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 뜰에 놓인 검게 그을린 나무 조형물은 토끼의 엉덩이를 연상시킨다. 몇미터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조형물과 함께 바라보면 비로소 토끼의 귀가 보인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었던 토끼를 양림동의 언덕에서 비로소 만나는 셈이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마을이 예술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자, 예술이 다시 마을을 채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작품이 놓인 골목을 걷고 그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도슨트와 동행하세요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11월15일까지, 양림골목비엔날레는 10월31일까지 이어진다. 마을에서 양성한 예술여행도슨트의 도움을 받으면 여행의 깊이가 달라진다. 광주관광공사에서는 도슨트와 함께 파빌리온을 방문하면서 마을 이야기와 작품 해설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투어’(120분, 1만원)를 준비했다. 매주 금·토요일 오후 2시와 4시에 양림동 마을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양림골목비엔날레에서는 양림문화샘터에서 출발하는 ‘도슨트 투어’(90분, 1만5000원)를 운영하고 있다. 10월31일까지 축제 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진행된다.
10월 중에는 매주 금·토요일 오후(6시, 7시, 8시)에 배우들과 1930년대 양림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양림모단 연극투어’(60분, 1만원)도 진행된다. 상세 예약 정보는 양림골목비엔날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약 필수.
피해자 어머니가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직접 던진 질문이다. 2014년 9월 일본 고베시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실종돼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열린 첫 공판에서부터 피해자의 유족인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피해자참가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가했다. 피해자참가인에게는 피고인을 직접 신문할 권리가 있다. 피해자 어머니의 신문에 피고인은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이밖에도 “왜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나”, “사과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물었다. 검사를 통하지 않고 피해자 측이 직접 피고인에게 범행이유를 따진 것이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피해자 어머니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재판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 “진실을 알고, 피고인이 정당한 죗값을 치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피해자참가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이처럼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재판에서 직접 질문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 권리를 보장할 방안을 더 일찍 고민했던 국가들은 관련 제도를 만들어 피해자의 절차 참가를 보장하고 있다. 피고인(피의자)의 방어권과 피해자의 권리가 ‘회복과 정의’란 큰 우산 아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법과 제도 역시 현실 속 한계를 갖고 있지만 적어도 ‘피고인 방어권 대 피해자’란 이분법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절차 속으로 들였다는 의의가 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만난 피해자·법조인·활동가들은 ‘형사 피해자들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10여년 전과 비교해봐도 각종 피해자 커뮤니티와 단체가 늘어났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찾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정당한 자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외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내 사건에 내 자리를 갖는 것, 그것은 피해자를 ‘불쌍한 사람’이 아닌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과 법체계가 유사하다고 평가되는 일본은 2008년 피해자참가제도를 도입했다. 참가를 허가받은 피해당사자 혹은 그 유가족은 피해자참가인 자격을 갖게 되며, 소송행위에 관한 의견진술권, 증인 및 피고인 질문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피해자참가제도는 살인죄·상해죄·성범죄·인신매매·교통사고를 포함한 과실치사상죄 등을 대상범죄로 한다. 참가를 신청한 피해자 약 99% 허가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피해자참가제도를 처음으로 적용한 공판이 2009년 1월23일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성의 아내와 형이 피해자참가인으로 법정에 출석했고,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피고인을 직접 접하며 분노가 커졌지만, 우리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면 재판관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었다. 직접 마음을 말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들은 ‘검사에게 대신 질문하도록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란 질문에는 “제3자가 대신 말해줘도 피해자의 마음은 피고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피해자만의 참여 욕구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이 제도는 어느 정도 실효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5년판 범죄백서’에 담긴 범죄별 피해자참가제도 현황을 보면, 2024년 1심에서 성범죄에 해당하는 비동의추행, 비동의성교 등의 합은 32%였다. 살인, 상해, 강도치사상을 합한 26.9%보다 높았다. 친부의 성폭력을 실명으로 고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피해자 후쿠야마 리호 역시 피해자참가제도를 통해 재판의 당사자로 참가했다.
일본 사례는 기존 당사자주의의 틀 안에서 피해자가 일정 수준의 참여권을 갖는 구조를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 2011년 피해자참가제도 도입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주요 모델이 됐던 것도 일본의 피해자참가제도였다. 당시 논의는 탄력을 받지 못했고 정부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으나, 최근까지도 피해자 참가 방안을 논하는 자리에선 일본 사례가 흔히 거론된다.
이밖에 형사 피해자에게 폭넓은 권한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독일이 꼽힌다. 독일의 부대공소제도는 성폭력·인신매매·스토킹·살인미수 등의 피해자에게 부대공소인으로서 공판절차에 참가할 지위와 권한을 준다. 범죄 피해로 사망한 자의 유족에게도 부대공소권이 인정된다. 부대공소인은 원칙적으로 검사와 같은 범위 내에서 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일출석권, 기록열람권 등을 비롯해 질문권, 이의제기권, 증거신청권, 상소권 등을 행사한다. 피해자가 원하더라도 검사가 항소·상고하지 않으면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기회가 없어지는 한국 상황과 다르다.
부대공소제도는 독일에서 100년 이상에 걸쳐 보완을 거듭해왔다. 제도가 적용되는 범죄군과 부대공소인 권한의 범위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성범죄·강력범죄 등 피해가 중대한 범죄의 피해자에게 참가 기회를 넓히는 쪽으로 발전했다. 독일은 또 경미한 범죄의 피해자는 검사 없이 독자적으로 형사소추할 수 있도록 사인소추제도를 두고 있다.
해외 여러 국가에는 취약한 성범죄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을 방지하고, 가해자가 성폭력 통념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피의자(피고인)가 자신의 방어권을 명분으로 피해자를 모욕하고 흔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장치들은 흔히 ‘레이프 실드 로(Rape Shield Law·강간피해자보호법)’로 불린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형법은 피해자가 과거 다른 성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번에도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거나 ‘신빙성이 낮다’고 추론하는 것을 금지한다(제276조). 피고인이 피해자의 성적 이력을 증거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비공개 심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으려면 해당 공판 쟁점과의 관련성, 구체성 등을 갖춰야 하며 편견의 위험성보다 현저히 큰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법원은 피고인의 방어권·차별적 편견을 배제할 필요성·피해자의 존엄성과 사생활에 미칠 불이익 등을 고려해 판단을 내린다.
미국도 연방증거규칙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의 과거 성관계 사실 또는 성적 취향은 원칙적으로 증거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예외 요건은 부당한 편견의 위험보다 증거가치가 큰 경우, 피고인이 아닌 제3자의 흔적임을 증명하기 위한 경우 등으로, 역시 비공개 심리에서 허용돼야만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때 성범죄 피해자에게도 의견청취 등의 기회를 주도록 돼있다.
이런 제도 하에선 피해자가 증인신문에서 ‘평소 (성관계할 때) ○○자세를 좋아했다면서요?’, ‘예전에 ○○에서 한 성관계 좋아했다는데 기억 나나요?’ 등과 같은 피고인 변호인의 질문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②‘반박조차 할 수 없는, 방청석의 피해자’). 피고인 측이 ‘피해자 유발론’을 비롯해 성폭력 통념에 근거한 질문을 설계하는 것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전체 사법절차에 걸친 피해자 보호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도 많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피해자권리법을 통해 범죄 피해자의 권리 8개를 규정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가해자의 보석과 가석방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출소한 가해자의 위험성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존재가 피해자임을 고려한 것이다. 프랑스는 전국 지방법원에 피해자지원국을 두고 피해자를 ‘원스톱’으로 조력한다.
피해자를 절차 안으로 들이는 일은 정교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피해자에게 여러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자칫 피해자에게 과중한 역할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참가를 위한 제도를 설계한다면 어떤 범죄군에 적용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줄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국가마다 제도가 마련된 배경과 법체계가 다른 탓에 외국 사례를 한국에 일방적으로 이식하기도 힘들다.
최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피해자 보호 공백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며 여러 후속 입법과 보완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검사에게 전건 송치하는 내용의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7대 범죄에 대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보완수사·재수사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중수청법 개정안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형사재판 참가권에 대해 포괄적으로 숙의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보완수사권 폐지의 파장을 보완하려는 단발적 입법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관련 기관이 피해자를 보는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도와 실무가 따로 노는 현실 속에서 제도 개선만으론 피해자 권리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명화 법무법인 이채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피해자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람등사권을 예로 들면, 관련 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내부 규칙이 정비되지 않는다면 (현장에선) 별로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지원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변호사도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점이 검찰과 법원에 형성돼 있다. 이대로라면 피해자 권리를 법제화한다 하더라도 (관련 기관의) 교육과 훈련이 실질화되지 않는 한 변화가 어렵다”고 짚었다.
관점을 바꾸려다 보면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사법절차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피고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는다면 피해자는 무엇으로 보호받아야 하는가.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것이 한 명의 무고한 자가 고통받는 것보다 낫다’는 법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절차 속 ‘보이지 않는 존재’로 밀려난 피해자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한번쯤 돌아봐야 하는 질문들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법절차가 피의자(피고인)를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그에 맞게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재판의 주요 목적 중 하나”라며 “실체적 진실 발견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건 그러한 의미에서 정당성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피해자에게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진 못 한다”고 말했다.
오지원 변호사는 “피해자를 참가시킨다고 해서 무고한 피고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며, (해외 사례에서 보듯) 사법제도가 무너지지도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기울기가 어긋나있다 보니 그것을 바로잡는 게 마치 균형을 깨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균형을 잡아야 할 기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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